경영상 필요 정당해도 정관의 한계를 넘을 수 없어 — 고려아연 신주발행 무효 판결의 함의
- seoultribune
- 57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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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최근 영풍이 제기한 신주발행 무효확인 소송에서 고려아연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문제의 발단은 고려아연이 2023년 9월, 현대자동차와의 합작사인 HMG글로벌을 상대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이다. 법원은 이 신주발행을 고려아연 정관에 위배된 것으로 보아 무효로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자본조달·전략적 제휴라는 경영상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정관 및 상법이 설정한 신주인수권 보호의 원칙을 결코 가볍게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의미 있는 판례로 평가된다.
법원은 판결에서 고려아연이 현대차와의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고 HMG글로벌과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한 점, 즉 경영상 목적 자체는 충분히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고려아연 정관은 제3자 배정 신주발행의 대상을 ‘외국의 합작법인’ 으로 한정하고 있었는데, 재판부는 이를 “고려아연이 직접 출자해 설립한 외국법인”으로 해석했다. HMG글로벌은 고려아연이 출자하지 않은 독립 법인이므로, 정관이 예정한 제3자 배정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신주발행은 정관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 것으로, 상법 제418조가 보장하는 주주 우선 신주인수권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은 기업들이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하면서도, 동시에 정관 및 상법상 요건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운다. 제3자 배정은 본질적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법은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정관에 엄격한 요건을 두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아무리 경영상 필요를 내세워도, 정관에 명시된 대상이나 절차를 벗어나면 신주발행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향후 국내 기업들의 자본조달 전략과 정관 설계, 그리고 M&A 구조 설계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기획하기 전에 반드시 정관상 허용 범위를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주주총회를 통해 정관을 선제적으로 개정하는 방식으로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정관에 대한 경시와 임의적 해석은 결국 소송 리스크와 경영권 분쟁이라는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뿐이다. 주주권 보호라는 상법의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보다 정교한 지배구조와 투자 유치 전략을 구축해야 할 때다.
서재욱 파트너
※ 서재욱 파트너는 한양대 및 동 대학원, Northwestern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화, AIG(AIA), ING, Prudential, 푸본현대생명 등에 근무했고, 현재는 에임브릿지 파트너스 및 마블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 및 M&A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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