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愚齋: 알람브라와 세상을 등진 선배
- seoultribune
- 2024년 11월 8일
- 2분 분량
톨레도에서 Jaen 하엔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북킹닷컴에서 급히 서치하여 찾은 곳이다. Hotel Restaurante Encacion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기차역 옆에 있는 허접한 호스텔이다. 그나마 식당에는 손님이 많다. 체크인하자마자 객실을 나왔다. 너무 더워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은 컨셉을 베낭여행으로 잡았기 때문에 아예 숙소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캠핑 사이트가 너무 적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캠핑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캠핑 장비 구입도 쉽지 않았다. 프로판 가스통을 사야 했는데 적절한 마켓을 찾지 못했다.
미국의 저렴한 모텔인 M6와 달리 스페인의 호스텔에는 전자렌지도 없다. 식당에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왔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많다. 스페인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기는 했다. 경찰관도 스탠딩 바에서 무언가 먹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는 우리나라 사람처럼 왁잘지걸하다. 메뉴에 적힌 스페인어를 이해하지 못해 번역기를 돌렸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스페인 음식을 시식하는 것이기에 번역기를 돌리는 척하다가 아무것이나 찍어 버렸다. 앙트레는 카르파치오 수프였고 메인은 돼지고기였다. 앙트레는 기대 이하였다. 기차역 주변의 식당에 대한 나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았다. 맥주 한 병을 마시니 머리가 금방 띵했다. 높은 온도의 날씨에 알코올이 즉각 반응한 탓이었다.
알람브라 궁전 입구에 도착하니 아직 입장 시간 전이었다.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 너무 일찍 왔다는 후회조차 들었다. 정문이 아닌 옆문을 돌아 가보니 십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섰다. 지나 가는 안내원에게 물으니 알람브라를 입장하는 줄이라고 했고 8시 30분 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원에서 궁전으로 가는 길의 양쪽에는 향나무가 예쁘게 꾸며져 있는 산책 길에 있다. 향나무의 향기가 길을 메우고 있었다. 이렇게 크게 잘 지워 놓은 정원과 궁전을 놔두고 술탄은 어떻게 죽었을까? 진시황이 두고 가는 것이 너무 너무 아까워서 병마용을 만들어 말과 장점의 테라코타를 넣은 것이 이해가 간다. 인근의 흙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로 알람브라는 건축되었다. 궁전의 내부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떤 물건을 보고 모티를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모습의 모자이크였다. 십여 분 모자이크를 감상하다 보니 감탄을 넘어 포기로 이어졌다.
작은 호수 같은 물 위에 비치는 궁전의 일부 모습이 아름다웠다. 알람브라를 차지한 이슬람 왕조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왕궁에서 이베리아 남부를 통치하였다. 수 백년 간 왕궁에서 스페인을 호령한 인걸은 간데 없고 왕궁의 주랑과 벽만이 남아 그 시절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칼르로스 5세의 궁전은 알람브라보다는 소박했다. 둥근 건물 복판에 마당이 있는 구조였다. 한 켠에 미술 박물관이 있어 표를 샀다. 미술 박물관에는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회화가 걸려 있었다. 특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그림이 많다. 카톨릭에서 마리아의 존재는 예수 그 이상인 것 같다. 알람브라를 뒤로 하고 말라가로 차를 몰았다. 2시간 30분 이상 구경하였더니 더 이상 볼 힘이 없었다. 알람브라는 나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주었다. 알람브라 자체가 아니라 일의 선후를 바꿔 두 가지 일을 모두 성공시킨 실례이기 때문이다.
알람브라 구경을 마칠 즈음, 고등학교 선배가 소천했다는 카톡을 받았다.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 혈액암 때문에 AB형의 혈소판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일부 선후배가 혈소판 기증에 나섰다. 잘 될 줄 알았다. 이제 환갑인데…. 문뜩 ‘돌아가신 선배는 알람브라를 구경해 보셨나?’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조각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시간이 무지무지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의 향연, 무릎보다 높은 굵은 가지를 가진 장미, 슐탄 한 사람이 즐기기에는 너무 너무 큰 정원…. 몇 초 후 ‘보면 뭐 하나? 죽으면 다 소용없는데….’라는 시쳇말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냥 원하는 것을 많이 하고 갔다면 그걸로 좋을 것 같다.
至愚齋
서울트리뷴 (c)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