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愚齋: 스페인 베자
- seoultribune
- 2024년 11월 19일
- 1분 분량
라구스에서 지방도로와 고속도로 위를 두 시간 가량 달려 처음 방문한 도시인 베자라는 작았다. 베자 시내는 우리 고향처럼 한적했고 주차 공간도 넉넉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정하지 않은 관계로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성당을 찍어 걸어갔다. 길거리에는 농사를 지어 직접 판매하러 나온 사람들이 농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감자, 수박, 토마토… 토마토가 아주 먹음직해서 사고 싶었지만 혼자 먹을 생각을 하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성당에 가기 전에 요새로 보이는 관광지가 나타났다. 요새 입구의 입간판에서 설명하기를 중세시대 때 이슬람과 기독교인과의 싸움이 심했다고 한다.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베자의 성벽을 복구했다고 하는데 제대로 복구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이슬람에게 잃어버린 땅, 즉 실지의 회복인 레콩키스타를 위한 전쟁은 처절했던 모양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수 백년을 산 이슬람인을 쫓아 낸다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 전투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엔리케 왕자가 이사벨 여왕이 의기투합을 했다고는 하나 이슬람 세력의 저항은 상당했으리라 짐작했다. 15세기 당시에는 그 땅이 이슬람이 주인인지, 스페인이 주인인지 함부로 주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장엄함이 이슬람 군대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암시해 주었다. 리콩키스타는 카톨릭과 이슬람의 대결이었다. 기독교와 유대인이 이슬람에 대항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콩키스타 이후 많은 유대인은 박해를 피해 네델란드 등으로 이주를 불가피하게 하게 된다. 베자에도 성당이 있기는 했으나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至愚齋
서울트리뷴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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