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규제, 보다 신중하고 세밀한 입법 필요
- seoultribune
-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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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사주(자기주식) 규제 강화가 논의되며 기업의 자본정책을 제약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배주주 견제와 시장 투명성 제고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사주에 대한 본질적 성격과 학술적 논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규제 일변도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자사주는 단순한 지배구조 이슈가 아니라 기업 재무전략의 핵심이고, 그 성격을 둘러싸고 오랜 기간 다양한 학설이 존재해 왔다.
자기주식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크게 자산설(資產說)과 소각설(정리·차감설)이 대립해 왔다.
자산설은 자사주를 기업이 보유한 하나의 경제적 자산으로 본다. 실제로 기업은 자사주를 시장에서 매각하여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인수·합병(M&A), 경영권 방어, 임직원 보상 등 다양한 전략적 목적에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사주는 처분 가능성과 경제적 효용을 가진 ‘재산’으로 인정된다.
반면 오늘날 회계·법제도는 소각설 또는 차감설을 채택하여 자사주를 자본의 차감항목으로 본다. 이는 주주에게 발행된 주식이 다시 회사로 돌아온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자본이 회수된 것으로 해석하는 접근이다. 그러나 회계상 차감 처리가 자사주의 경제적 효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가 여전히 전략적 자산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문제는 이번 자사주 규제 입법이 이러한 학설 간 균형점을 외면한 채 ‘자사주=지배주주 악용수단’이라는 단순한 서사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주는 한국 기업의 자본정책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주가 안정, 시장 변동성 대응, EPS 개선, 잉여현금의 효율적 환원 등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해외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한국 기업은 지분구조상 적대적 M&A에 취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사주는 경영 안정과 장기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 중 하나다. 이를 법적으로 제한하면 오히려 기업을 투기적 자본에 노출시키고,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
주주환원 관점에서도 규제 강화는 부정적이다. 자사주는 배당과 달리 유연하게 주주가치에 반영되는 장치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환원 방식이다. 소각 의무나 활용 제한은 기업의 자본정책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약하여 오히려 주주이익을 떨어뜨릴 수 있다.
더구나 자사주에 대한 규제는 이미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취득 목적 제한, 공시 의무, 시장조작 금지, 내부자 규제 등 현행 법제만으로도 남용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문제는 규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투명성을 높이고 일부 관행을 개선하면 될 사안을 입법으로 일괄 봉쇄하려는 정책 방향이다.
자사주에 관한 학설은 그 자체로 기업의 자본전략과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무시한 채 단선적인 규제만 강조하는 것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매력을 떨어뜨리고, 국제 투자자의 신뢰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 강화’가 아니라 투명성 중심의 합리적 제도 개선이다. 자사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서재욱 파트너
※ 서재욱 파트너는 한양대 및 동 대학원, Northwestern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화, AIG(AIA), ING, Prudential, 푸본현대생명 등에 근무했고, 현재는 에임브릿지 파트너스에서 Private Equity, M&A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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