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보험사의 종말? 적응? 생존?
- seoultribune
- 12월 13일
- 3분 분량

‘혁신’ 아닌 구조의 한계…흡수·후퇴·연명으로 갈라진 운명
국내 디지털 보험사들이 출범 당시 내세웠던 ‘보험 혁신’ 구상이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업계 전반에서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전용 보험사를 표방하며 출범한 주요 손·생보사 대부분이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흡수합병, 전략 후퇴, 모회사 자본 수혈에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어서다.
금융·보험업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주요 디지털 보험사 5곳의 합산 순손실은 약 1,854억원에 달한다. 손실 규모 자체는 전년 대비 줄었지만, 이는 사업 경쟁력 개선의 결과라기보다 상품 축소, 영업 위축, 반복적인 유상증자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보험사의 적자 축소는 회복이 아니라 체력 고갈의 신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UX로는 보험을 못 판다”…한국 보험시장의 본질적 한계
디지털 보험 모델이 국내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배경에는 한국 보험시장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보험시장은 장기·보장성 상품 비중이 높고, 실손·건강보험처럼 소비자 관여도가 높은 상품이 핵심을 이룬다. 대면 설명과 설계사 신뢰, 장기간 관계 형성이 구매 결정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디지털 보험사들은 ‘간편한 가입’과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운 전자상거래식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보험은 구매 빈도가 낮고 상품 이해도가 낮은 대표적인 신뢰재다. 가입 편의성만으로 수요를 창출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보험료도 마케팅 및 고객DB 비용 증가로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는 소비자의 판단도 존재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UX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 보험 판매의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캐롯손보, 디지털 보험 구조적 한계의 ‘선례’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캐롯손해보험이다. 캐롯은 ‘퍼마일 자동차보험’이라는 혁신 상품으로 주목받았지만, 손해율 변동성이 컸고 고객 기반 확장에도 실패했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 채 누적 적자는 약 3,30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새 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으로 자본 부담이 급증하면서, 결국 캐롯은 한화손해보험에 흡수합병되는 수순을 밟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경영 실패라기보다 규제 환경 속에서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캐롯 사례는 ‘혁신 상품’이 곧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하나·신한EZ손보, 디지털 전략의 후퇴
다른 디지털 보험사들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나손해보험은 전신인 더케이손보 시절 교직원 자동차보험이라는 안정적 고객 기반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디지털 종합 손보 전략을 추진하며 기존 강점을 희석시켰다. 이후 적자가 이어지자 다시 장기보험 확대와 대면 영업 조직 강화로 방향을 선회했다.
신한EZ손해보험 역시 기업·특수보험에 강점을 지녔던 카디프손보에서 출발했지만, 디지털 B2C 손보 시장 진입 이후 브랜드 인지도와 소비자 접점 경쟁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후발 주자로 장기보험과 실손보험에 뛰어들며 동질화 전략을 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랫폼 보험도 예외는 아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플랫폼 트래픽을 기반으로 소액·생활밀착형 보험을 판매하고 있지만, 보험 자체의 수익성은 제한적이다. 상품을 확장할수록 자본 부담과 규제 압력이 커지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특히 과도한 인건비 부담으로 회사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교보라이프플래닛 역시 10년 넘게 적자를 이어오며 3,600억원 이상을 유상증자로 조달했다. 장기 유지율이 핵심인 생명보험 특성상, 디지털 단일 채널로는 사업 성립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다.
K-ICS가 만든 ‘현실의 벽’
디지털 보험사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또 하나의 장애물은 지급여력 규제 강화다. K-ICS 체계에서는 변동성이 큰 보험 포트폴리오일수록 요구자본이 늘어나는데, 초기 적자가 불가피한 디지털 보험 모델에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결국 모회사의 자본 부담이 커지고, 전략적 철수나 흡수합병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E·M&A 시장의 반응 “투자 대상인지 의문”
사모펀드(PE)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도 디지털 보험사를 독립 투자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크게 약화됐다. 독립적인 밸류에이션이 성립하기 어렵고, 엑시트 역시 전략적 투자자 매각이나 그룹 내 정리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대신 채널, 데이터, 기업보험 확장성, 재보험 연계 가능성 등 ‘전략 옵션’으로서의 가치만 제한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디지털 보험사’는 사라지고, 디지털은 흡수된다
디지털 보험사에 부정적인 견해는, 국내 디지털 보험사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독립 산업으로 설계되기 어려운 모델이었음이 입증됐다는 입장이다. 향후 디지털 보험은 별도의 회사 형태가 아니라, 기존 보험사의 기능·채널·IT 레이어로 흡수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한다. ‘디지털 보험사’라는 간판은 사라지더라도, 디지털 자체는 보험 산업 전반으로 스며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AI시대 디지털 보험사의 미래는?
결국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디지털 보험사의 미래는 어떨까?
에임브릿지 파트너스의 서재욱 대표는 "결국 AI시대에도 디지털보험사가 생존하려면 단순히 보험가입의 편리성만 가지고는 안된다. 혁신적인 상품이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고, 이것이 디지털 보험사와 결합될 수 있을 때 그 생존도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서울트리뷴 (c)
